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아버지의 지게

먼 숲 2007. 1. 26. 07:08
 
 
 

 

  

 

 

얼마전부터 이제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지게"가 화두처럼 등에 붙어 다닌다. 화두라고 할 것 까진 없지만 지게라는 사라져 가는 그 물건이 옛 추억과 삶의 애환을 무겁게 지고 다니다가 어딘가에 부려져 버린 짐보따리처럼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사는 게 점점 복잡하고 내 어깨가 무거워지고 힘겨워지는 요즘 지게를 볼 적마다 새삼 아버지란 이름이 그리워진다.

 

지게는 내 기억중에 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상징적인 물건이여서 그런 것 같다. 내게 지게는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슬프고 아픈 기억의 한부분이었다. 유년시절 저녁이면 지게 가득 꼴짐이나 나뭇단을 지고 오는 다른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태산을 떠메고 오는 것처럼 커보이고 든든해 보였다. 그런 풍경은 아버지가 안계신 쓸쓸한 자리에선 한 집안의 가장이 부를 지고 오는 것처럼 부러운 힘의 근원이었던 것 같았다.

 

그 당시만 해도 지게는 오직 남자들의 힘을 가늠할 수 있는 중량의 상징으로 아버지가 안계신 내 집에선 지게는 낡고 망가져 버린 상태였다. 조금 커서 동무들과 산에 나무를 하러 가도 그들은 지게에 나뭇짐을 지고 오는데 지게가 없는 난 새끼로 나뭇짐을 묶어 등짐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면 어깨가 새끼줄에 패여 갈라지듯 아프거나 힘없이 툭 줄이 끊어져 나뭇단이 헝크러지는 낭패를 당하며 혼자 고생해야 했다. 지게가 없으니 남보다 나무를 많이 할 수도 없고 등에 지고 일어나려면 한두번은 몸부림을 치거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패대기를 쳐야 했다. 그 때부터 집집마다 헛간에 기대어 서 있는 지게가 특별하게 보였고 제법 손재주가 있으신 아버님이 계셨다면 지게뿐만 아니라 헛간에 황소도 메고 써레질은 문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야속하고 슬프기도 했다.

  

보기엔 별 거 아닌 것 같은 데 무거운 짐을 버틸 단단한 지게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우선 지게다리의 두 기둥을 마련하는 것부터 어려워 보였다. 기역자로 굽어진 적당한 소나무를 베어 껍질을 베끼고 말려두었다가 모양대로 깎고 쇠줄로 조이고 지게꼬리를 엮어야 하는데 그런 건 어른의 몫이였으니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작대기 하나 만들지 못하는 어린 난 지게가 필요하면 늘 이웃집에서 빌려다 쓰곤 했다. 자연 지게질도 서툴어 뒤뚱대고 일어나다 툭하면 나동그라지기 일쑤였다. 어른한테 배우지 못한 일이 농사꾼인 동갑내기들에 비해 어설픈 지게질뿐 아니라 낫질도 서툰편이였고 늦게서야 조금씩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아버지가 없는 편모슬하에서 늘 힘없이 기울고 있었다. 어쩌다 지게를 빌려쓰다가 지게끈이 끊어져 버리면 정말 당혹스러웠고 다음부턴 눈치를 보면서 이집 저집서 빌리거나 지게의 키가 안맞아 키 작은 어른의 지게를 빌려오기도 했다. 한참 후에야 줄이 길면 아래 좁은 줄을 지게 다리에 말아서 높이를 줄이는 요령을 알게 되었지만 그 때는 볏짐을 져 나를만큼 커 있었다. 경운기가 대중화 되기까지 지게는 집집마다 없어서는 안 될 운반기구였고 농지정리가 된 곳이 아닌 산골이나 골짜기의 다랭이 논은 지금도 지게로 져 나를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그렇게 지게질은 내가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보이지 않는 통과의례였고 지게는 아버지가 없는 부재 상태에서 오랫동안 아쉬운 장애물이였다

 

아버지란 역할은 그 집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고 삶의 무게를 져 나를 수 있는 큰 힘인 걸 알아가면서 그 빈자리가 어둡고 허전했다. 헛간의 기둥이 기울어 지붕이 쏠리거나 대문이 낡아 돌쩌귀가 망가져도 반듯하게 고칠 줄 몰랐다. 한 집안의 외형상 가장이 없는 빈 자리는 그렇게 기둥이 기울고 쓰러져 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자리를 의식하며 외롭던 사춘기 시절 난 가끔 지게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이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거나 작대기로 땅을 콕콕 찧으며 심심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또 겨울날 나뭇짐을 지고 가다 땀을 식히려고 쉬는 동안 지게를 내려놓고 기대어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너무 붉고 아름다워 넋을 놓고 보기도 했다. 때론 혼자 지게에 버거울만한 슬픔과 고독함을 짊어지고 눈이 쌓인 산길에 새 발자욱처럼 내 푸른날의 발자국을 남기고 다녔다.

 

그런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난 세상 바람을 쐬면서 세파를 견디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이젠 문간에 지게가 없어도 되고 아버지가 울타릴 막거나 이영을 이어 지붕을 올리지 않아도 되고 구들을 고치며 겨울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한 세상에 산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 역할을 하면서부터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빈 자리는 잊고 산다. 하지만 해 저무는 저녁길을 지게 가득 지고 오시는 그 옛날의 모든 아버지의 지게에 실린 짐은 아직도 무슨 큰 산을 지고 오시는 것 같이 커다랗게 보인다. 

 

점점 내가 아비로 나이들어 가면서 등에는 벗을 수 없는 빈 지게를 달고 다니는 것 같이 허전하거나 감당키 어려운 책임이란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 문득 뒤돌아보게 된다. 비록 지게는 사라져가는 이름이 되었지만 난 옛날의 아버지처럼 아이들을 지게에 태우고 위풍당당하게 걷고 싶고 싸리 바작이 쳐지도록 행복을 지게 가득 지고 노을지는 저녁길을 들어서고 싶다.

 

 

2003.10.19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