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정 인 성>
푸른 시간의 결들이 아득한 회향(懷鄕)의 숨결로 잠든 골동품처럼 그 향기와 윤기를 간직하며 살 수 있을까
어머님의 쪽 진 머리의 동백기름 냄새나 코티분 속에 묻어 논 바늘처럼 녹슬지 않고 오동나무 궤짝속의 놋그릇처럼 세월을 닦으면 거울같은 내 모습 볼 수 있을까
동그란 문고리를 열고 닫고 하면서 격자진 문살처럼 엮어진 추억의 이야기를 빈 원고지의 여백속에 세월의 흘림체로 시냇물 흐르듯 그렇게 그려 낼 수 있을까
빛 바랜 갈빛의 낙서장을 들추다 음습했던 청춘의 오솔길에 번진 청태 낀 추억을 아주까리 기름이 반들대는 마루결에 엎디어 마음의 나이테처럼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수없이 피고 진 뒷 뜨락 여름꽃의 잔영이 햇 봄 메주 뜨는 장독대의 까만 간장빛 같은 기억의 동굴을 지나면 누이의 손끝에 물든 봉숭아빛 꽃물처럼 그 다홍빛이 바래지 않고 있을까
젊은 날 누님이 심어 놓은 백합의 향기와 유월, 내 들창에 넘실대던 분홍빛 장미의 향기 먼 그리움의 긴 꽃대를 올려 여름의 울타리를 내다보던 상사화의 눈빛도 검버섯 피는 세월의 고랑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을까
사라지는 것은 없는데 다만 우린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2001.2.8일. 추억의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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