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밖까지 고갤 내민 짧은 해를 수선스런 까치들이 쪼아내려 볕드는 툇마루에 주저앉혔다 기다림으로 움푹패인 저녁해에 새눈물처럼 고인 보고픔이 찰랑댄다.
물난리진 한 해 동안 나락 한 톨 까지 거둬들여도 주워담지 못한 그리움만은 빈 벌판 가득 펼쳐져 겨울은 길고 쓸쓸했다.
다 떠난 야윈 가슴은 삼백예순날 식어버린 냉골이지만 설날 하루만이라도 불을 지피려 젖은 아궁이에 불씨를 넣는다.

말라붙고 뭉그러진 젖무덤이지만 내일은 젖냄새나는 고향을 찾아 올 아직도 강아지같은 새끼들을 위해 쭈그러진 이남박에 쌀을 씻는다.
빈 세월의 끝에서 일어 낼 돌맹이조차 없는데 그을음만 남은 부엌에서 자꾸 헛조리질만 하면서 희미한 기억들을 건져 올린다.
사랑도,추억도,그리움도 다 사위어 그믐달처럼 굽어지고 가늘어졌지만 오늘만은 보름달같은 등을 밝히려 심지를 돋우고 등잔을 닦는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목숨의 불을 켠다.
2004.1.5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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