隱居를 꿈꾸다

만추의 오후

먼 숲 2012. 10. 26. 11:56

 

 

 

 

 

 

 

 

 

 

 

 

막바지의 단풍이 꽃철보다 더 곱다

아침이면 차마 밟기 아깝게 고운 낙엽길을 걸어 버스정류장을 향한다

밤이면 바스락 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스산한 바람결에 뒤채인다

꽃처럼 고운 단풍 한 철

느릿하게 사색하며 걷는 뒤안길의 여백을 만들지 못하고

아쉬운 한 숨만 쉬며 가끔 창 밖을 내다보다 가을이 저문다

사랑도 그리움도 탈색된 남루한 추억이

이 가을엔 더욱 헐벗어 보인다

잊혀져 가는 것일까? 잃어가는 것일까

혼자 점점 외로워져 가도

이젠 생각나는 사람, 그리운 사람이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빼곡히 적어 두었던 작은 수첩도, 비망록도 사라진 지 오래다

기억이 메말라 가니 머리속은 황폐해져 간다

절절한 마음이 식으니 많은 생각들이 등을 돌린다

어딜가면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젊은날엔

왜 부질없는 낭만과 꿈에 취해 있었을까

이렇게 낙엽지는 가을이 오면

블란서 문화원에 들러 뜻도 모르는 영화를 보거나

무거운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음악실에 파묻혀 있거나

바람부는 산길을 걸으며 새가 되길 원했다

문학에 중독된 꿈과 낙서들이 낙엽처럼 흩날렸다

그 소중한 추억의 갈피가 지워져 간다

지금 가을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껏 간절히 사랑한 사람은 나 자신이였다

늘 미완의 어설픈 자화상에 연민을 느끼며

그를 위해 아파했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여

이 바람부는 거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낙엽이 몰려간 골목길 끝자락에 있을 작은 찻집이나

고적한 고궁의 벤치에서 둘이 앉아

스러지는 오후의 햇살을 볼 수 있을까

참으로 젊고 아름답고 순수했던 그대가 그립다

그대의 고뇌는 달콤했고 그대의 꿈은 흰구름 같았다

그대의 방랑은 아팠지만 그 마음여행은 자유로웠다

낙엽지는 오후, 나는 지금 그대가 그립다

 

 

 

2012년 10월 26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