隱居를 꿈꾸다 진부의 山村을 그리워하다 먼 숲 2012. 8. 23. 09:26 칠월에서 팔월을 지나는 여름의 문턱은 그야말로 용광로다 열흘 넘게 낮에는 뜨거운 열풍이 불고 밤엔 열대야로 잠을 설치는 날이 계속되면서 두 달 넘게 몰아친 일로 휴식도 없이 여름을 살자니 지칠대로 지쳐갔다 살갗이 스쳐도 덥고 짜증스럽듯이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도 날카로워지고 피곤해져가는 하루는 그야말로 파김치처럼 축 쳐지고 견디기 힘겨워 홀가분하게 멀리 떠나고픈 생각뿐이였다 더구나 갱년기를 보내는 우리 부부는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위태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서로 기댈 수 없이 지쳐가다 보니 사소한 일들이 서운해지고 무거워져 자주 등을 돌리게 된다 곪아가는 빤한 오해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서로 터트릴 여유도 없이 외로워져 가는 날들은 점점 삶의 무게가 무거워지면서 그만큼 시들어가고 권태로워지는 중년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이유없이 팽팽한 갈등과 긴장도 힘들겠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서로 돌아선 무관심과 체념일 수도 있다 일부러는 아니지만 소소한 감정이 쌓이면서 서로간의 두꺼운 장벽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그냥 일과 더위 때문이라 핑계를 대며 심신이 지쳐갈때쯤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떠남이였다 가장으로서 일과 자식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잠깐이나마 자유로워지는 여행은 새로운 충전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얼마전 집근처에 시외고속버스터미널이 개장하여 먼 지방으로 떠날 수 있는 발판이 생겼다 어쩌다 운전대를 잡는 피곤함도 없이 고속버스에 몸을 기대고 낯선 도시로 향하는 자유로움이 좋아 나는 버스 여행을 제안했고 우리 부부는 간단한 여장을 챙겨 새벽 첫 버스에 올랐다 단번에 목적지를 갈 수는 없지만 낯선 지방에서 몇 번씩 차를 갈아타며 기다리는 여유는 홀로움의 여행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낭만과 자유로움을 즐기는 기회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택한 여정을 따라 원주에서 다시 갈아탄 기착지가 진부다 이십 오년전에 정선을 가기 위해 잠시 들렀던 인상깊은 소읍도 진부였다 예전같지 않게 번잡해졌다 해도 버스터미날은 한적하고 시골스럽다 옥수수를 쪄서 파는 작은 가게들과 싱싱한 자두로 좁은 좌판을 벌인 할머니 한 분이 전부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갓 쪄낸 옥수수를 사서 월정사를 향한 시골 버스에 오른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은 어딜가나 반듯하게 포장된 시골길이라 옛스런 낭만은 사라졌지만 물줄기를 따라 구불구불한 산촌의 풍경은 골마다 펼쳐진 마을이 오손도손 정겹고 아름답다 진부는 강원도의 고냉지라 차창밖은 감자밭과 양배추, 당귀, 당근, 무 같은 농작물이 한창이다 공해가 없는 산촌의 녹색식물은 보기만 해도 싱싱하고 건강해 보인다 버스는 물길을 거슬러 오르듯 오대산 계곡을 따라 숲길로 든다 간간이 산사로 가는 시골버스는 한적한데 월정사에 도착하니 관광객들이 골짜기 가득하다 오래전 일주문에서 절로 드는 울창한 전나무 숲길은 따로이 관광코스로 내주고 돌다리 건너 절로 들어가는 입구가 새로 생긴 것 같았다 월정사는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처음 들러본 여행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몇년전부터 문득 문득 마음의 행로가 그 곳으로 향하면서 다시 가보리라 마음 두었던 곳이다 꽃다운 나이에 찾았던 산사를 결혼후 이십년이 지난 중년이 되어 다시 찾으니 감회가 새롭다 혼자 길을 가도 내 안에 다른 내가 많아 혼란스럽고 복잡한 생각으로 갈등이 심한 편인데 아내와 나란히 보폭을 맞추니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무거워도 오랜만에 발걸음이 평화롭다 수백년이 지난 고목들이 자리한 숲길을 짧은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 스치는 바람처럼 길을 간다 어쩌면 저 고목들 사이에서 우리의 인연은 해마다 이 숲길에 피고 지는 들꽃과 다를 바 없을 듯 싶다 찌는 듯한 복더위지만 하늘이 보이지 않는 녹음속의 숲길은 서늘하다 곧은 직립의 숲길을 걷는 마음은 구불구불 잡목숲을 걷는 마음과는 다르게 반듯해진다 마음같아선 이 숲길이 한 시오리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짧은 거리에 허탈함이 남는다 어딘가 물소리 맑은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휴식하고픈 아쉬운 여행지의 끝에서 문득 십여년 전 고향을 떠나 이 곳 진부에서 은거해 사는 벗에게 전화를 건다 마침 집에 있으니 들러 가라는 친구의 반가운 소리에 설레임을 안고 길을 떠난다 고등학교 시절 그 친구는 나팔바지에 고고춤을 아주 잘 추던 친구다 개그맨처럼 익살스럽고 재미있어 인기도 많았지만 얼굴도 표인봉이나 홍록기를 닮은 친근한 친구다 졸업후에도 늘 같은 지역이라 소식은 뜬구름처럼 들었지만 이십년이 넘어도 서로 만나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해 그 친구가 갑자기 진부로 들어가 흙담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단 소식을 들었다 한창 귀농을 꿈꾸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도심에 사는 것도 아니였는데 그가 산골로 들어갔다는 게 궁금했었다 칠팔년 전 근처 양떼 목장에 들렀다가 그 친구가 생각나 보고가려 했지만 만나지 못해 늘 진부를 그리워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나온 그를 따라 들어간 산촌의 보금자린 내겐 무릉도원처럼 보였다 잣나무 숲이 울창한 산길을 따라 올라 간 산 중턱에 지은 오두막 주위론 양배추밭이 꽃밭처럼 곱다 너와 지붕에 토담으로 손수 지은 아담한 오두막을 올해 지붕만 양철 기와로 바꿨다고 한다 처마가 낮은 잔디 마당엔 투박한 원두막이 있어 평상 마루에 앉으면 사방 푸른 산세을 조망할 수 있다 함지박만한 작은 연못엔 도룡용이 살고 담장도 없는 마당가엔 여름들꽃이 빙 둘러 한창이다 정겨운 돌담 대문 앞엔 붉은 다알리아가 손님을 맞이하고 듬성듬성 과목이 심어진 마당가 아래 텃밭엔 샐러리에 파슬리,피망, 당귀에 곰취, 각종 산나물까지 청정한 녹색식물이 밭이랑마다 싱그럽다 유기농 농사를 위해 거름을 얻고자 키우는 누렁소와 닭, 그리고 여섯마리의 양까지 있으니 잠시 친구의 보금자릴 둘러보면서 나는 꿈꾸던 고향에 온듯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 친구가 이렇게 산새같은 보금자릴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적응하가까지의 갈등과 고생으로 견뎌야 했는지를 헤아려야 했다 서로가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기에 농사가 낯설지 않더라도 결코 낭만적이고 목가적이 아님을 안다 산사태에 다시 집을 짓고 황무지같은 산비탈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기까지 흘린 땀은 짐작하기 쉽지 않다 어느 한 곳 정성스런 친구의 손길이 안 간 곳 없어 가축도 밭도 집도 정갈하고 청정하다 마른 들꽃을 수놓은 들창이 있는 거실로 드니 흙집이라선가 삼복 더위에 선풍기조차 없는데 서늘하다 마루에 앉아 얼음동동 띄운 향기로운 솔잎차를 한모금 음미하니 등허리의 땀이 식고 숲에 든 듯 시원하다 간간이 산바람이 불어오는 원두막에 나와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이 친구의 안사람은 이른 저녁을 준비한다 밭에서 방금 뜯은 싱싱한 푸성귀와 봄나물의 향기를 그대로 절임한 간이 딱 맞는 장아찌가 일품인 정갈한 밥상을 받고 나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안사람의 정성과 고운 마음이 맛깔스럽게 곰삭은 이른 저녁상을 너무 행복하게 먹으며 어느날 불현듯 지치고 힘들때 고향처럼 찾아와도 반겨주는 벗이 강원도 산촌에 산다는 게 내겐 마음으로나마 큰 위안이기에 이런 친구가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다 낯선 외지에 와서 많은 고생을 하며 일군 그의 터전에서 부자는 아니래도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같이 나누며 살고 건강하고 욕심없이 살 수 있어 하루하루가 무척 고맙고 감사하단 생각으로 산다는 그 친구의 영혼이 행복하고 착해 보였다 인생의 삶은 어쩌면 이렇게 가꾸어 가는 과정에서 그 모습이 완성되어가는 건 아닐까 똑 같은 교복을 입고 한창 철없던 시절을 보낸 그 때는 서로가 이런 모습이란 걸 예감치 못했는데 어느새 세월은 산등성이에서 저녁해처럼 저물어 가며 스치는 만남들이 추억으로 아득해진다 나는 해마다 봄이 되면 흙이 그리워 한 차례 몸살을 앓는다 그래도 이십년 넘게 농촌에서 뼈가 굵은지라 겨우내 잠자던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봄은 내 정신을 깨우고 새로이 씨를 뿌리는 순례의식같은 계절이 되었다 살수록 좋아하는 화초 한 송이 심지 못하는 삭막한 일상을 살면서 새싹은 경외스러운 존재가 되어간다 이제는 귀농을 꿈 꾸기엔 너무 늦고 그럴 여력도 되지 않아 봄이 되면 들판을 서성이지만 이렇게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촌부가 친구로 있으니 마음으로나마 자연의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절기마다 그 곳에 내려가 가끔은 흙을 밟으며 땀을 흘리고 싶다 버스시간에 맞춰 서둘러 저녁을 먹고 진부의 산촌을 떠나려니 아쉬움이 산자락처럼 칭칭 감긴다 산그늘이 마당까지 내려오며 날이 저물려 하는 저녁이 앞산을 건너 느릿하게 다가오고 있다 옥돌 구들을 깔았다는 아랫채에서 하룻밤 지새며 오랫만에 지난 회포도 풀며 밤 새 우는 골짜기에서 여름밤 산골의 쏟아지는 별자리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사는 것에 쫓겨 서둘러 산촌을 떠나온다 오랜만에 지쳐있던 아내의 마음도 가벼워졌는지 떠남을 아쉬워 한다 잠깐이지만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그 곳이 정이 들은 모양이다 눈 앞에 삼삼한 산촌을 뒤로하며 떠난 귀경길에서 우린 혼곤하게 잠이 들었다 내일 또 다시 일하기 위해 도심으로 떠나지만 난 아직도 아름다운 隱居를 꾼 꾼다 영혼은 늘 고향을 향하고 우린 영혼이 평온하게 쉴 수 있는 샹그릴라를 찾아 헤멘다 그러나 그 마음의 고향은 소박한 산촌의 오두막처럼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너무 먼 곳을 가고 있는 것 같다 내 그리움은 운무 가득 그 곳에 머문다 친구여! 언제나 푸른 강원도의 산맥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2012년 8월 23일 먼 숲 <이 사진속의 산촌에서 그 친구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