隱居를 꿈꾸다

여름날의 저녁답

먼 숲 2012. 6. 29. 08:15

 

 

 

 

 

 

 

 

 

 

 

 

꽃이 이우는 저녁이면  석양은 꽃빛으로 피어난다

붐비는 퇴근시간, 저녁은 사거리 신호등을 건너도 대낮처럼 환해

가끔 유순하게 집으로 돌아가던 길을 잃어 버리고 만다

누군가는 차 한 잔 하자고 벗을 부르고

누군가는 술 한 잔 하자고 동료와 가던 길을 벗어난다

어둠이 늦어지는 여름의 저녁은

그렇게 여유로운 일탈의 시간으로 게을러진다

나는 그런 객기도 부리지 못한 채 야간 일을 기다리며 허탈해 한다

언제부턴가 오히려 일하는 시간이 잡념도 없이 불안하지 않다

그 시간만큼은 삶의 하중을 잊고 무리속에 있다는 소심함이 주는 위안일거다

요즘처럼 아직 어두워지지 않는 환한 저녁을 맞이하면

이 여유로운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 지 서성거린다

갑자기 귀소본능의 항로를 잃어버리고

어느 외딴 섬에 착륙한 새처럼 외로워진다

오랫동안 한눈 팔 여유없이 변방을 오가다 보니

흥청거리는 거리의 불빛이 낯설고 시끄럽다

아니 언제부턴가 내 안에 불이 꺼지자

활기찬 도심의 거리도 시들어가고 죽어가는 느낌일 것이다

이제 나의 시간이 망국의 역사처럼 저물어간다 해도

느릿느릿 어둠이 오고 서쪽 하늘이 오래도록 붉어지는

하지를 지난 한여름의 저녁답이 좋다

마음같아선 서해바다나 자유로를 달려 서북쪽의 언덕에서 노을을 보고 싶다

황금빛 윤슬로 반짝이는 여름바다는 이글이글 용광로처럼 타오를 것이다

겨울처럼 짧은 운명을 하는 석양과는 달리

여름의 석양은 여유로운 유언을 말하며 꽃처럼 스러진다

그래선가 노을이 아름다운 초여름의 저녁엔

접시꽃, 능소화같은 화려한 꽃들이 석양에 기대어 피어난다

오랜 가뭄으로 마음밭도 사막처럼 갈라지고 메말라 먼지가 일고

갈망은 이미 바닥을 들어낸 저수지처럼 배를 드러냈다

칠월의 문턱엔 장마비가 온다는 소식에 비를 기다린다

꽃이 이우는 이 여름날의 저녁답

어느 하루쯤 노을지는 까페에 앉아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으며

 애끓는 카덴짜에 눈물 삼키며 석양속으로 저물고 싶다

아! 함박꽃 향기 숨어 있던 유월의 숲도 노을속으로 떠났다

어느새 올해의 반나절도 허둥지둥 떠돌고 말았다

또 다시 새들이 더운 부리로 붉은 저녁을 물고 온다

 

 

 

2012년 6월 29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