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노스텔지어

신록의 숲길을 가다

먼 숲 2012. 5. 21. 17:56

 



 

 

 

 


 

 

 

 

 

 

 

 

숲속으로 은은하게 빛이 든다

차광된 일상에서 싱그런 햇살에 노출된 심신은 평화로워 눈을 감는다

계곡 가득 산그늘로 내리며 환하게 빛나는 녹음속의 초록빛을 보았는가

셀로판지를 통해 보던 신비로운 색의 동화속에 빛은 산바람이 불적마다 살랑거린다

눈부신 햇살에 투명하게 드러나는 초록의 잎맥은

물고기처럼 빗살무늬로 살아나 고요한 바람의 물살에도 해살거리며 유영한다

신록은 푸른 실핏줄로 이어진 탯줄을 따라 능선에서 산맥으로 점점 짙어져 간다

물소리가 먼저 마중나와 길 안내를 하는 반가움에 손을 씻으니 살결이 소름돋게 시원하다

뒤란이 넓은 처마 깊은 집 뜰, 장독대 옆에 다소곳 피어있던 금낭화

족두리를 쓴 부끄런 새색시같던 금낭화가 산길을 따라 피어 있어 고향집 같은 오솔길이다

마치 실로폰처럼 줄지어 핀 금낭화 옆을 지날적마다 맑은 음표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침이면 고개숙인 꽃망울마다 이슬이  눈물처럼 맺혀있던 분홍빛 금낭화가

강원도의 먼 산길에 피어 있다니 산행을 하는 발걸음이 가볍고 신록처럼 젊다

이미 봄꽃이 지고 초하의 흰꽃들이 필 시절인데 산이 깊어선가

매발톱꽃에 구슬붕이나 앵초같은 귀한 야생화도 응달에 숨어 피어 있다

꽃이 피고 지고 잎 돋아 자라나 무성해지는 숲의 질서가

산을 오르는 길가에서 즐거운 이야기처럼 어울려 있어 정겹다

농익은 녹음속을 걷는 적막하지 않은 이 고요로운 산보에

동행하는 아름다운 발자욱이 있으니 이 어찌 행복한 일 아닌가

저마다 열심히 바르게 살아 온 이들의 보폭이 이곳에선 느리고 평화롭고 꽃같다

천천히 숲속을 걷는 노을처럼 저문 이들의 뒷모습에 후광처럼 산빛이 푸르다

숲속의 향기를 폐부 깊숙히 호흡하며 조분조분 나누는 산행의 대화가

연두빛 다래순처럼 넝쿨진 세월의 줄기를 따라 새록새록 돋아난다

 

 

 

 

 

 

어느샌가 내 삶의 두께도 굴피나무처럼 골지고 딱딱하게 두터워졌다

 일에 몰려 사느라 모처럼 어렵게 떠난 산행길에서 오늘은 옹이진 마음을 내려 놓는다

오직 더불어 숲을 이루는 초록의 나무처럼 푸르른 마음으로 걷는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오월의 꽃향기를 기억하며 갈매빛 신록으로 눈을 씻는다

간간히 부는 산바람으로 땀을 식히며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숲의 소리를 듣는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아름다운 사람들의 발자욱소리가 어울린 산의 소리를 듣는다

때론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흐르는 물소리가 징검돌이 있는 어느 작은 소에서 여울이 진다

들이친 햇살에 어른거리는 물무늬를 보니 아지랑이처럼 어지럽다

잠시 물거울에 나를 비춰보며 낯설어가는 내 모습을 찾으려 하나 보이지 않는다

오후의 햇살이 점점 산속으로 경사를 이루는 하산길에서 머뭇거려 본다

산중턱 함박꽃나무 옆에 작은 암자라도 짓고 바람이 되어 머물고 싶은 마음에서다

흐르는 구름에 그리움을 띄우고 숲에 내리는 빗소리에 그리움을 씻으며 숲이 되고 싶어서다

아쉬움의 그림자가 산그늘로 남는 오월의 산길에서 숲을 이룬 나무에게 인사를 전한다

늘 그렇게 푸르게 평화롭게 잘 지내라고 숲에게도 나에게도 청안의 인사를 전한다

뻐꾸기라도 울어주면 좋을텐데 산이 깊어선가 그리운 뻐꾸기 소리가 없다

뻐꾸기처럼 같이 울어주는 메아리가 그리운 세월이다

속세의 삶에서 숲을 이루지 못하고 자꾸 외로워하는 세월이기도 하다

이렇게 쓸쓸해져가는 날들속에서 숲길을 동행해준 지인들이 있어 행복했다

그 청청한 숲같은 지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글을 쓰면서도 발끝에 채이던 소박한 들꽃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푸르름이 풀멍처럼 마음에 오래 남을 이 호젓한 산행이 다시 그리워질거다

일렁이는 초록의 파도가 다시 날 부를 것이다

 

 

2012년 5월 23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