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을 닮다

포플러가 있는 풍경

먼 숲 2011. 6. 20. 12:17

 

 

 

 

 

 

 

■  흐린 유월의 오후, 는개가 내리는 川邊길을 나서니

길을 따라 터널을 이룬 벚나무 가로수길에 까맣게 익어 떨어진 버찌가 아름답다

오랫만에 걷는 둑방길엔 무성해진 풀섶 사이로 작년에 씨를 떨군

붉은 꽃양귀비와 청보라빛 수레국화 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다

갈매빛 녹음의 산과 파란 하늘이 데칼코마니처럼 투영된 시냇물의 물빛은 풀숲을 따라 짙어져가며 소리없이 흐른다

그  초록의 골짜기를 따라 가다 보면 유월 한가운데 머얼리 서너그루의 키 큰 포플러 나무가 서 있다

느릿한 둑방길에 호젓하게 서서 햇살과 바람을 타고 무성하고 푸르른 이파리를 흔드는 눈부신 포플러 나무들

그 싱그런 포플러의 직립이 마치 유월의 풍경을 완성시켜주는 느낌표처럼 멋진 수직 구도를 그려 준다

그만큼 초여름의 포플러나 미루나무는 우리의 동심과 함께 자라고 우리의 꿈과 추억이 깃든 그림속의 나무이기도 하다

성하의 계절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문득 포플러 나무 아래의 서늘한 그늘이 그리워진다

구름도 높다란 포플러 나무 위에서 쉬어가고 바람도 무성한 이파리들과 해작거리며 놀다가는 여름풍경을 생각하니

모네의 포플러가 있는 풍경의 그림들이 보고 싶어진다

늘 모네하면 먼저 수련이 떠오르곤 했는데 그는 포플러가 있는 여름의 강가를 배경으로 들판 가득 쏟아지는

빛과 그림자의 변화를 관찰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풍요로운 빛의 세계를 인상깊게 화폭에 그린 것 같다

정수리 위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유월의 햇살을 피하지 않고 초록의 들판을 느릿한 걸음으로 걷고 싶다

강물을 따라 세월을 따라 상류에서 하류로 내 생의 물빛도 흐려졌지만 유영의 강물은 노래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강을 따라 오르는 먼 길목에 그리움처럼 포플러나무들이 서 있고 낭만의 숲이 있다

 

(아래 그림과 글은 오 마이 뉴스에 실렸던 것을 임의적으로 발췌해 실었다. 마음속의 遠景들이 아득하다)

 

 

 

2011년 6월 20일     먼     숲

 

 

 

 

 

▲ 지베르니의 아침풍경(Morning Landscape, Giverny)

 

모네는 피사로(Camille Pissarro, 프랑스, 1830–1903)와 함께 인상주의의 창조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가장 확실한 인상주의 화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여름아침의 독특한 분위기와 느낌을 유감없이 발휘한 위 그림을 포함하여 아래 포플러나무와 관련한 그림들에서 그 평가와 인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근감이나 구도를 포함한 전체 구성은 둘째에 두고라도 첫 눈에 들어오는 살아있는 색채와 자연에 대한 생동하는 느낌만으로도 우리 모두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 풀밭과 뒤로 보이는 산이나 밝은 하늘 사이, 자연을 감싸고 있는 대기의 미묘한 기운이나 신비로운 빛이 감도는 풍경의 순간적인 분위기와 환상적인 느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아르장퇴유 근처 프롬나드(Promenade Near Argenteuil), Oil on canvas, 1873, Private collection

▲ 포플러나무 아래로 햇빛 비치는 광경(Sunlight Effect under the Poplars)


▲ 아르장퇴유 근처,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Meadow with Poplars (Poplars near Argenteuil))

 

 

세 그림 모두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바람이 실감나게 느껴집니다. 더불어 햇빛과 바람이 사로잡고 있는 대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빛 고운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과 구름, 포플러 나무와 발아래 풀밭, 그리고 그 풀숲에 어우러진 꽂들과 등장인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춤을 추고 있습니다. 풍경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라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하고 있는 특정 순간을 인상적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 에프트의 포플러나무(Poplars on the Epte), ,Oil on canvas, 1891,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Edinburgh

 

 

위 두 그림 가운데 첫 번째 그림은 지면을 기반으로 사선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늘어 서있는 포플러 나무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면을 중심으로 수면에 비친 구름과 나무의 그림자까지 똑같이 배치되어 대칭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물의 구분도 모호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화면에 포착된 모든 소재가 바람과 대기의 기운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모네의 서명이 뚜렷하게 보이는 위 두 번째 그림 역시 강가의 지면을 중심으로 서 있는 네 그루의 포플러 나무의 밑 부분을 그린 그림입니다. 마찬가지로 물 밑의 그림자까지 선명하고 뚜렷하게 묘사하여 당시 모네가 받았던 강한 인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수면을 아래 1/3로 배치한 대칭구도로 안정감을 더하였으며, 같은 간격으로 늘어 서 있는 포플러의 모습이 시적인 정취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 에프트 강가의 포플러나무(Poplars on the Banks of the Epte), 1891,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USA

 

 

위 그림은 모네의 포플러 연작 가운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뒤집힌 S자 모양의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늘어선 포플러 나무와 나무들이 마치 손에 손을 잡고 바람과 함께 군무를 추고 있는 듯, 우리의 강강술래라도 돌고 있는 듯 보이는 시원하면서도 푸르른 이 그림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위 두 그림의 구성과 색감, 분위기와 느낌으로 보아 이 작품은 같은 시기, 비슷한 날짜에 그린 연작 그림으로 보입니다. 이 두 그림을 비교해 봄으로써, 빛의 흐름과 바람에 따라 변하는 하늘의 순간적인 느낌과 대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그런 느낌을 포착, 화폭에 담아내고자 애썼던 모네의 붓질과 숨결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네의 많은 그림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해변과 강가의 밝은 대기를 즐겨 묘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화면에 담겨있는 소재뿐 아니라 빛나는 외광(外光)과 공기의 흐름까지 신선한 색채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위 두 그림에서도 그런 느낌을 실감할 수 있는데, 화창한 어느 한 낮과 해질 무렵 노을에 물든 포플러 나무의 이 두 푸른 색채감이 신비롭고 놀랍기만 합니다.

 

▲ 에프트 강의 굽은 길(Bend in the River Epte)

 

 

 

에프트 강 한 가운데에서 마치 배를 타고 그린 듯한 이 그림이야 말로 햇살 고운 빛의 색채와 진동하는 공기나 대기의 흐름을 만끽할 수 있는 그림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모두 즐겁게 충족시켜주는 음악성 강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 그림을 살펴보면 사물의 뚜렷한 선이나 색채의 구분으로 윤곽선을 강조한 그림이 아닙니다. 반면 이 풍경화는 빛의 굴절과 그에 따른 색채의 효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포플러 나무와 바람에 잘 흔들리는 잎새 하나하나, 나무 아래 들풀들, 그리고 미미하게 진동하는 수면의 윤곽선까지 흐려져 있으며 바람과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여름 빛 고운 햇살에 은비늘처럼 반짝이는 하얀 잎새가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또 살랑거리는 바람에 잎새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살그락 살그락, 잘랑 잘랑, 포플러가 들려주는 자연음악에 정신이 맑아집니다. 뿐만 아니라 바람과 함께 넘실거리는 잎새 하나하나의 부드러운 춤사위가 눈을 밝게 해주며 어릴 적 추억까지 상기시켜 줍니다.

 

 

 

▲ 네 그루의 포플러나무(Poplars. Four Trees), 1891, Oil on canvas,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일생동안 인상적인 풍경 그림을 주로 그렸던 모네

인상주의 그룹이 해체되자 모네는 파리를 떠나 지베르니에 정착하였고, 1890년부터 동일한 대상이 다른 광선 조건에서 어떻게 변화하며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 탐구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던 모네의 포플러 연작을 감상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그림을 통하여 그 시대의 자연과 환경, 날씨, 그리고 빛의 노래와 바람의 춤사위까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프랑스 문학이 역사소설에서 현실적인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전환해가는 동안, 모네를 포함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단조로운 기법과 사실적인 훈련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과 일상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화실을 벗어나 야외에서 펼쳐지는 풍경의 빛, 색채, 그리고 대기를 포착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위 모네의 포플러 연작에서 그런 인상주의 특징과 그 결정체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빛의 마술에 걸려 한평생 빛의 변화만을 찾아다녔고 그런 풍경을 표현하고자 애썼던 모네를 인상주의의 진정한 창시자라 평가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며 정당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이 그를 '빛의 화가'나 '빛의 마술사'라고 찬사하는 이유일 것이며 또 위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05. 8. 20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