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을 닮다

바다의 아코디언

먼 숲 2011. 6. 17. 15:41

 

 

 

 

 

 

 

 

 

 

 

 

 

 

 

 

 

바다의 아코디언



                                       김 명 인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파도 소릴 긁어대던 아코디언이
갯벌 위에 떨어져 있다
파도는 몇 겁쯤 건반에 얹히더라도
지치거나 병들거나 늙는 법이 없어서
소리로 파이는 시간의 헛된 주름만 수시로
저의 생멸을 거듭할 뿐
접혔다 펼쳐지는 한순간이라면 이미
한생애의 내력일 것이니
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
저 영원을 다 켜댈 수 있겠느냐
채석에 스몄다 빠져나가는 썰물이
오늘도 석양에 반짝거린다
고요해지거라, 고요해지거라
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삶과 같아서 뻘 밭 위
무수한 겹주름들
저물더라도 나머지의 음자리까지
천천히, 천천히 파도소리가 씻어 내리니
지워진 자취가 비로소 아득해지는
어스름 속으로
누군가 끝없이 아코디언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