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빙선을 기다리다

사월의 문을 열며

먼 숲 2011. 3. 31. 12:09

 

 

 

 

 

 

 


                    

 

 

 

 

 

 

 

                             산수유나무의 농사 / 문 태 준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 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 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사진 : 블러그 우두망찰 세상보기에서>

 

 

 

 

꽃 진 자리에  /  문 태 준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시집 - 맨발(2004년 창비)

 

 

 

 

 

사월이 문을 여는데 꽃소식이 늦다

혼란스런 기상이변과 세상사에 꽃도 놀란 모양이다 

아침저녁이면 아직도 겨울처럼 쌀쌀하니 겉옷을 벗지 못한 채 움추리고 있는 것 같다

이 스산한 시절에 꽃이라도 만화방창하여 꽃나들이라도 하면 기분전환이 될텐데 삼월의 끝이 춥다

서둘러 기다린다고 빨리 오지 않을 꽃소식도 가만히 사월의 문설주에 기대섰노라면

어느날 살며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세상을 열리라

엊그제부터 이 곳 북쪽마을에도 산수유가 노오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이제 온 산이 봄꽃으로 흐드러지는 사월이 깊어가면

꽃구름 흘러가는 산길에 서서 사월의 노래를 부르리라

사월은 조용조용 꽃이 피는 시간이다

 

 

 

2011년 4월 1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