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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만이라는 기록적인 폭설로 허리가 꺾이는 설해목의 아픈 통증소리에
깊은 겨울잠에 들지 못한 산골짜기가 자주 뒤틀리는 신음소릴 내며 몸서릴 쳤지
골바람이 몰아칠적마다 웅웅거리며 울던 나목들이
목이 휘는 무거운 가채처럼 머리에 이고 있던 눈을 털어내며 진저릴 쳐댔지
지난 겨울은 나를 눈보라속에 가두며 아득한 소통의 길을 지웠어
그리고 만년설처럼 쌓인 적요하고 너른 설원에
언젠가 혼자 가야할 외로운 마음길을 그려 주었지
아직 이 해빙의 계절에도 녹지않은 것이 많겠지
볕이 들지않는 가파른 골짜기 응달의 적설이나 깊은 계곡의 얼음들은
아직도 어두운 동면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삶의 응어리가 가슴께까지 언 가난한 삶의 달동네도 그렇지만
겨울내내 구제역에 폭설과 한파에 시달린 순한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꽁꽁 얼어있어 어깨가 시리고 마음이 얼음짱처럼 차가울 것 같아
하지만 얼었던 강이 녹고 쌓인 눈이 녹아 가까운 골짜기에 물소리가 흐르고 있어
온 세상이 시끄럽고 어지러워도 봄은 오고 산과 들은 기지개를 펴려고 해
나도 이제 두꺼운 외투를 벗고 봄강을 따라 물소릴 들으러 가려고 해
강변에 엎드려 따듯한 혈관을 흐르는 맑은 피돌기같은 물소리를 들어보고 싶어
거칠던 대지가 촉촉한 피부처럼 발그레하게 젖어가고
강둑 둔치에는 열다섯 소년의 거웃처럼 파릇하니 싹이 돋고 있을거야
온 대지의 생명들이 봄강의 물소릴 듣고 조용히 깨어나고 있어
잠시 순환의 간이역에서 쉬고 있던 손님들이 연두빛 수신호를 따라
봄이라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떠나려 하고 있지
강물을 따라 느리게 꽃길로 여는 여행길에 나도 동승하려고 해
그 길은 언제나 내가 꿈꾸던 아득하고 먼 여행길이지
봄바람이 참 간지럽게 따스한 오후
졸졸거리는 물소릴 듣는 건 꿈속의 여행처럼 감미로울거야
이제 희망이란 그런 식상한 언어는 필요치 않아
그저 『봄』이라는 한마디만 해도 마음이 꽃봉우리처럼 부풀지
어쩌면 『봄』이라는 말은 모든 걸 볼 수 있다는 종결적인 말이니
가장 살아있는 생명력있는 말의 끝이 아닐까
아! 그런데 갑자기 생각 난 그 의미에 공연히 슬퍼지는 남루한 세월이여
하여도 우리의 모든 시작과 끝은 꽃이였다네
2011년 2월 24일 먼 숲
< 그림 최재순 화백의 겨울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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