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을 듣다

십이월, 세피아빛으로 저물다

먼 숲 2010. 12. 14. 09:09

 

 

 

 

 

 

 

 

 

 

 

 

 

 

 

저무는 빛이 사위기 전

일몰의 황홀함은 그 얼마나 눈부신가

역광에 비춰진 겨울숲의 그림자가 깊어지면

잠시 윤슬처럼 반짝이는 빛의 파장

저무는 빛이 슬프게 여위어 가는 계절이 겨울이다

무채색의 빛바랜 암갈색이 침전되어

말갛게 우러나는 숙성된 빛을 세피아빛이라고 해야할까

어둔 암실같은 겨울속에서 건져올리는

필름속에 비춰진 어둔 세피아빛 풍경을 보면

가난하게 남겨진 세월마져 아릿아릿해지고

먼지처럼 분산되어 부유하던 편린의 시간들이

어둠속에 조용히 가라앉아 제자리를 찾고 평온해진다

그렇게 세피아빛의 저녁 풍경은 정지된 시간속을 비추며

저물어가는 기억속으로 따슨 호박빛 등불을 켠다

 

 아득한 유년이나 아름다운 청년기로 되돌아가

깊은 우물속에 비춰진 모습을 들여다 보듯, 이 겨울

붉고 푸른 시간들이 모두 탈색된 갈빛풍경을 보는 것은

얼마나 쓸쓸하고 가슴 시린 아름다움인가

문득 낡고 오래된 앨범을 들치듯

낙엽진 시간들의 페이지를 넘기면

내 생의 역사는 고장난 시계처럼 부동자세로 침묵하고

이미 허물어진 고향의 옛집 대청마루에 걸린 액자속처럼

세피아빛은 페허의 빛으로 남루하게 남아

 그리운 추억과 과거속에서 정지되어 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빛의 실루엣앞에서

바람처럼 어룽거리는 그리움의 시간이

가파른 십이월의 고갯마루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이울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다시 한 해가 저물고 내 생이 기운다

이제 저무는 것에 대하여 서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눈썹밑에서 지는 밀감빛 저녁 노을이

슬픈 눈으로 바라보기엔 너무 아름답다

어둠이  강을 건너오기 전

강물에 비친 저 세피아빛 그림자

그 빛의 침전속으로 내 하루가 또 저문다

 

 

2010년 12월 14일     먼    숲 

 

 

 

 

 

 

                                                                                                                                                       <사진 : 우두망찰 세상보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