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읽는 詩

standing in the rain

먼 숲 2010. 6. 20. 13:23

 

 

  

 

  

  

 

 


 

 

 

 

 

 

 

 雨期의 내력

 

 

 

김 종 제

 

 


물기 많은 곳에서
숨 안 쉬고 지낸 목숨 건져냈으니
내 몸의 사계절은 언제나
우기雨期다
그러니 햇빛 화창한 날에도
진흙 속을 파고든 벌레처럼
축축하게 젖은 채로 살아갈 수밖에
내가 장마와 같아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날에도
벌거벗은 내 몸으로
세상을 흠뻑 적실 생각만 하고 있다
그래서 자주 깊은 물 흘러내리는
강으로 가는 것인데
물 건너편에서 누군가
나에게 연신 손짓을 하고 있다
배도 없는데 물 건너오라는 목소리는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나의 전체가 물이므로
저벅 저벅 물위를 걸어가는 것이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걸음이 가볍다
물속의 시간들이 너무나 따뜻하다
홍수 같은 내가
물밀듯이 강으로 들어간 만큼
물 철철 흘러넘쳤으므로
물가에서 철 모르고 지낸 것들은
뿌리가 뽑히고 지붕만 남는 것이다
우기雨期의 내가 돌아갈 길도
칠흑 같은 어둠의 물속이다
온몸이 녹아버린 후에
내게서 물고기 비늘 같은 거 생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