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어머니는 거짓말쟁이시다

먼 숲 2010. 6. 7. 10:29

 

 

 

 

 

 

 




 

 

 

 

 

 

 

 

" 막내야.  이젠 네 큰 형이랑 인연 끊었다.

이젠 안볼란다. 그러니 형한테 전화도 하지말고

전화와도 암말 하지 마라 "

어머님 목소리가 앙칼지게 날카롭지만

뒷꼬리가 내려가고 기운이 없으시다

 

노여움이 고추처럼 맵고 뜨겁지만

그 속엔 아직도 벗어버리지 못한

아둔한 자식사랑이 빤하게 보입니다

 

팔순 넘은 노모가

환갑넘은 큰 아들을 아직도 가슴에 넣고

오랜세월 홀로 된 풍파와 아픔 기대지 못하고

금강송같던 아들이 비틀거리는 게  야속해

미움속에 뼈를 박은 아픈 사랑을 보이십니다

 

눈 감고도 보고 싶은 마음 뻔히 아는 데

다신 안보다는 빤한 거짓말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시면서도

자식 사랑도 똑 같다고 하시면서도

유독 맏아들에게 기울이던 사랑인데

어머님 새빨간 속 어찌 모를까요

 

보름 후,

전화속에서 가벼이 새가 날아간다

"막내냐. 네 큰형 왔다 갔다.

종중 회의 왔다가 그냥 가면 서운할까봐 들렀단다"

기운 찬 목소리로

"애들 잘 다니고 별일없냐" 하시곤 전화를 끊으신다

  

알아요

얼마후 거짓말처럼 당신이 전화를 하시거나

늙은 아들이 전화하면서

끊을 수 없는 자식사랑 나눌거라는 것

부모 자식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무슨 일 있을까 또 참견하시고

옛날얘기 되풀이하다가 토라지고

다 늙은 아들 다시 뱃속에 넣지도 못하고

제대로 법 먹고 사는지 걱정으로

죽을 끓이실 거라는 걸

 

 난 괜찮다는 가벼움에

괜찮지 않은 무거움도 있다는 걸

아프지 않다는 웃음속에

정말 아픈 한숨도 숨어 있다는 걸

우리가 맛나게 먹으면

어미는 저절로 식욕이 없어지고 배불러진다는 걸

 

우리가 아프면

열배 백배

어머님 마음이 더 아프다는 걸  아는 데 

"못된 놈, 이젠 다신 안 본다" 는 말씀

앵두처럼, 딸기처럼

 달콤 새콤한 어머님의 새빨간 거짓말이란 걸 압니다

 

그래도 아직 그렇게

또아리 튼 옹고집 살아서

앙탈부리시듯 역정내시고

머리 허연 못난 아들 역성드는 게 좋습니다

 

저도 어머니 닮아

아이들에게 곧잘 거짓말을 합니다

눈 하나 깜짝거리지 않고 거짓말 할 것 같은데

아직은 서툴러 화를 더 잘 내는 것 같지요

속상하고 힘든 표정 숨기지 못합니다

 

그래도 가끔

우리 애들 착하다고

어머님처럼 남들에게 뻥치고 삽니다

그렇게 뻥칠때가 참 행복하지요

그건 어머님 쏙 빼 닮았지요

 

 

 

2010년 6월 7일   먼     숲

 

 

  

 

 

 

 <사진: 김선규 기자의 빛으로 그린 갤러리에서>

 

  

 ■ 어제가 어머님 생신이셨다. 올해 연세가 어찌 되는지 궁금치 않다. 우리 마음속에서 어머니는

항상 같은 나이다. 그 사랑의 나이는 변치 않기에 고향이기도 하다. 여전히 이쁜 거짓말만 하신다

"바쁜데 왜 왔나고, 십원 한 장 쓰지 말고 그냥 오지, 아무것도 필요없는데 뭘 사왔냐고."

하기사 자식만 보면 행복하다는 걸 아니까 어머닌 거짓말쟁이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