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읽는 詩

웃음의 힘 / 반 칠 환

먼 숲 2010. 5. 31. 10:23

 

 

 

 

 

 

 

 

 

 

 

 

 

 

 

웃음의 힘

 

 

-  반 칠 환 -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   *   *   *

 

 

 오   해

 

 

                 봄날의 모든 싹눈과 꽃눈과 잎눈은 어둠속에 있던 것들이다
                개나리의 노란 꽃잎도,
                진달래의 붉은 꽃잎도,
                제 가슴을 찢고 나오기 전 까지는
                캄캄한 어둠속에 갇혀있던 것들이다
                생명이란 그곳이 어디든 '덜컥' 움이 되고 꽃이 되는 것이다
                봄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봄은 어디 먼데서 은총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캄캄한 내 속이 열어젖히는 것이다.

 

 

*   *   *   *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보도 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   *   *   *

 

 

갈치조림을 먹으며

 

 

 얼마나 아팠을까?

 이 뾰족한 가시가 모두 살 속에 박혀 있었다니


 

 

 

 

 

 

 

멸치에 대한 예의

 


큰 생선은 머리 떼고, 비늘 떼고, 내장 발라내고, 지느러미 떼면서

멸치를 통째로 먹는 건 모독이다

어찌 체구가 작다고 염을 생략하랴

멸치에 대한 예의를 갖추자

 

 

*   *   *   *

 

 

낮  달


울 어매

얇게 빗썰어 놓은

 무 한 장

 

 

*   *   *   *

 


목   숨

 

그럴 분이 아닌데

 손가락도 열 개

 발가락도 열 개 

이빨은 젖니 한 벌

 영구치 한 벌

 참 꼼꼼하신 분인데

  가장 소중한 목숨이

 하나뿐이라니
 

 

 

 

 

 

 

 

■  넝쿨장미의 월담이 날로 환하게 피어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내 허물어진 담장에도 그처럼 넝쿨장미 흐드러진 웃음 지으며 유월이 오면 좋겠다

길을 지나다 새빨간 넝쿨장미꽃이 꽃담을 이룬 집을 만나면

멈칫 그 집 대문 앞에 서성거려진다

해당화처럼 고운 소녀가

금방 초록색 쪽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기다림이 그려져서다

 

내일이면 유월이다

신록이 무르익은 숲에 아카시아, 산딸나무, 이팝나무같은 흰꽃이 환하다

초록바람으로 싱그러운 녹음 아래서

반칠환 시인의 짧은 미소같은 詩를 읽고 싶다

 시의 행간 사이로 살랑살랑 비단결같은 바람이 지나면

시집으로 차양을 치고 初夏의 단잠에 빠지고 싶다

그리고 잠시 莊子의 꿈을 꾸고 싶다

 

 

 

2010년 5월 31 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