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듣는 메아리

Stationary Traveller / camel

먼 숲 2009. 12. 14. 18:30

 

  

 

 

 

 

 

 

   

 

 

 

 


  

 

 

  

 

■ 때론 이미지가 그 외의 모든 것을 사로잡아 버리는 때가 있다

여기 사진들은 영국의 카멜이라는 그룹의 앨범 자켓인데 이 사진속의 이미지가 그렇다

그래선가 오래전부터 황폐한 거리에 서 있는 쓸쓸한 여인의 사진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한 해가 저무는 지금쯤 저 사진속의 여인처럼 골목길에 서 있고 싶은 계절인것 같다

오랜 방랑의 길에서 문득 가로등처럼 서서 지나온 인생길이거나 가야할 길에 대하여

조용히 생각하며 내 안을 비춰보는 고독한 여행자이고 싶다

어쩌면 삶은 허망히 세월을 소모하는 쓸쓸한 여행인지도 모른다

돌아 보니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산 한 생의 역사가 순간에 불과하다

순박하리만치 종종거리며 살아 온 날들이 십이월의 정거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찬서리에 시든 초목처럼 초라한 자화상의 그림자가 세월의 골목에서 서성거리고

 지금 나는 기다릴 사람도 없이 누군가를 기다려 보는

 이젠 만남과 이별이 다르지 않은 무감한 사막의 세월앞에 멈춰 서 있다

 살수록 인생이 삼류소설처럼 통속적이고 시시해지며 영혼마져 추위를 느낀다

문득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는 뒤안길의 골목에 찬바람이 몰아간다

가슴을 할퀴는 듯한 기타의 서정과 애조띤 팬풀릇의 멜로디가 슬픈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Stationary Traveller가 되어 배회하던 거리에 멈춰서서 깊어진 겨울속을 본다

낙엽처럼 쓰러져 뒹구는 혼자만의 낭만을 가슴에 주워 담으며

잊혀졌던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를 기억하며 독백처럼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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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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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4일    먼    숲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