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또는 經典 / 안 승
안 승
내 앞에 놓인 한 잔의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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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나 봅니다 안시인님의 오아시스같은 글샘에서 퍼 올린 맑은 詩語를 읽으며 오가는 출퇴근길에서 또 다른 思惟의 세상을 그리던 때가 있었지요 숨겨진 은유의 사원 샘터에서 흐르는 단물로 목젖을 축이며 묵정밭처럼 메워진 행간의 고랑을 다듬거나 터를 일구기도 했습니다 기다림 끝에 올려진 새로운 글을 읽는 시간은 제겐 아침이였습니다 새벽을 지난 詩語들의 찬란한 빛과 사리처럼 응축된 사유는 신비로운 은유의 그림자 뒤에서 언제나 마음 설레게 하며 황홀한 울금빛이거나 맛깔스런 두릅빛의 詩를 되새김질하게 했습니다
제게도 詩는 머나먼 聖地입니다 가끔은 순례의 길처럼 詩를 찾아 떠나고 싶지만 이젠 손을 놓고 어둔 속세의 길을 오갑니다 마음이 맑지 않으니 푸른 미명을 볼 수 없고 안이 시끄러우니 밖을 볼 수 없지만 다행히 이 번잡한 마음속에서도 詩를 경전처럼 머리맡에 놓고 사는 게 힘이 됩니다 제 생애에 욕심내어 뼈아픈 시인은 꿈 꾸지 않더라도 제 마음의 가난한 經典 한 줄이라도 적어 희말라야산맥 바람의 언덕에 룽따처럼 걸어 놓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보다도 마음을 읽어주고 빛을 주는 도반같은 이웃이 오래도록 제 곁에 있어 길을 잃지 않고 새벽별을 볼 수 있다면 더 큰 행복이겠지요 눅눅한 우기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젖은 바람이 주는 촉촉한 물기가 안정제처럼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는 것을 사막에 있어 본 사람은 압니다 스콜처럼 지나간 날들이 그리운 지금 암갈색 아라비아산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經典처럼 안시인님의 그리운 詩들을 다시 읽어 보고 싶습니다 늦은 인사지만, 오래도록 안시인님의 좋은 시 기다립니다
2009.6.29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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