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저녁길
불빛에 젖은 그림자들은 눈물이 있다 사랑의 마음은 흐르고 흘러 모든 걸 적시고 더운피처럼 따스하게 해 준다 메마른 마음에 내리는 비는 감성을 솟구치게 하고 따스한 흐름으로 가슴을 적셔 주는 눈물이 된다 불빛에 젖은 그리움들이 촉촉해진 마음 가득 아슴한 그림자로 어룽거리는 비 오는 저녁이다 어두어지는 거리를 가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를 불러내고 싶다 비 오는 골목길의 목로주점에서 흔들리는 불빛따라 술잔을 기울이거나 불빛 환한 커피숍에서 뜨거운 차 한잔도 좋으리라 점점 등을 보이며 혼자 돌아가는 날이 많은 외로운 나이에 뜬금없이 동행할 수 있는 벗을 부르는 일이 쓸쓸하긴 하지만 적당히 단비가 오는 저녁이라면 그렇게 추억에라도 취하고 싶다
얼마 전 마음의 도반인 친구가 오랜 당뇨로 시력이 약해져 삼년전에 이어 이번에 눈 한쪽을 또 수술한다고 했다 우연히 전화 통화를 하다 병원에 입원해 있다 해서 문병차 그를 보았다 말이 없어도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벗인데 우린 이렇게 나이가 들었다 텅빈 병실에서 같이 마주한 소박한 저녁상이 참 행복했다 저녁 노을이 눈부시게 병실로 쏟아져 들어오고 우린 가난했던 지난 이야기보단 지금 바라보는 세월을 이야기 했다 평생 네가 있어 내 인생은 쓸쓸하지 않았다는 이야길 했다 네가 있어 주어서 내 아픈 젊음은 견딜 수 있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이야기 했다 어디든 그 친구와 같이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젠 아주 가까운 거리만 보일 뿐 주위의 풍경은 희미한 윤곽만 보인다고 했다 같이 푸르른 숲을 보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지는 해를 보고 싶었는데 그 밝은 시절을 바쁜 종종걸음으로 살다가 허망하게 지나버렸다 마음으로 늘 같은 방향을 볼 수 있어 외롭지 않았는데 앞으로도 내가 마음의 눈이 되어 주는 벗이 될 수 있을지 미안했다 세월따라 눈도 어두워지는 간단한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느 하루의 여백을 그 친구와의 여행으로 추억을 그릴 수 있었을텐데 미안했다 그래도 고맙다, 아직도 푸른솔 같은 네 옆에 마주 보며 설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느즈막히 일을 하고 있지만 비오는 퇴근길엔 마음으로나마 너를 불러내어 불빛 젖은 거리를 걷고 싶다 꽃이 피었다고 꽃소식을 전하듯이, 바람이 분다고 그리움을 전하듯이 오늘은 비가 온다고 축축히 젖은 외로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네 그림자는 불빛에 젖은 그리움처럼 쓸쓸했지만 언제나 따스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나에게 네가 친구가 되어준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인연이였다
2009.6 월 20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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