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의 "싸구려 커피"
- 노 래 -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지 않다
수만 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 랩 -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며는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비가 그쳐도 히끄무르죽죽한 저게 하늘이라고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건지
저거는 뭔가 하늘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금만 뛰어도 정수리를 꿍하고 찧을 것 같은데
벽장 속 제습제는 벌써 꽉 차 있으나 마나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을 볼 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
제멋대로 구부러진 칫솔 갖다 이빨을 닦다 보며는
잇몸에 피가 나게 닦아도 당최 치석은 빠져나올 줄을 몰라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 모금
아뿔싸 담배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 싸구려 커피 』
장기하와 얼굴들은 12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에서 열린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싸구려 커피'로
'올해의 노래', '최우수 모던록', '네티즌이 뽑은 남자 아티스트' 3개 부문을 휩쓸었다는
스치는 뉴스를 우연히 마주치다 생경하지만 제목도 친근감 있고
장기하란 가수가 누군가 하는 호기심에 검색하여 노랠 들어 보았다
옛날 산울림의 멜로디와 리듬이 되살아 나고 평범한 가사속에 스민 눅눅한 습기와 건조한 우울이
암울한 현 세대의 모습같기도 하지만 칠팔십년대 우리의 모습같기도 하다
요즘 외국어의 남발과 알아 들을 수 없이 빠른 템포로 반복해 떠들어 대는 싸구려 랩과는 차별되는
아픈 독백과도 같은 가사를 가벼운 판소리풍의 리듬으로 차분히 토해내는 그의 랩도 매력이다
인디계의 서태지라 불린다는 장기하의 이 앨범이
가내수공업방식으로 제작한 데뷔 싱글앨범이라니 신선하다
혀가 굳어 타령은 쫓아해도 도저히 랩은 따라하지 못하는 아날로그 세대지만
왠지 장기하의 노래는 같이 따라 부르며 젊은이처럼 즐기고 싶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눅진한 삶의 푸른 곰팡이가 스멀거리며 피어나던
고독하고 구석진 스무살의 방이 추억처럼 그립다
나는 요사이 싸구려 커피가 좋다
내 일상의 체온도 미지근해 졌다
2009.3.13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