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으로 취해, 뱃놈 인생은 말짱 개털이라고 내 남루한 치마폭에 오물을 게워놓고, 폐선 속의 쥐새끼처럼 하룻밤 내 썩은 몸뚱이를 다녀가신 선생님께--
바다 위에 노을이 타오르면 온몸 석유 끼얹고 분신하던 그이의 모습이 보여요. 와락 그 불덩이를 껴안았다가 얻은 왼쪽 얼굴과 귀밑 목덜미에 번져 있는 그 火傷(화상), 제 섬이에요. 낡은 통발배가 버려진 고무신짝처럼 떠 있는 남해의 작은 落島(낙도), 밤이면 선창의 붉은 불빛 객혈처럼 흐르는 좁은 술집 골목, 술자리에서 번번이 쫓겨나던 작부----,그래요.제 흉터의 섬,견고한 바다의 물결로 첩첩이 쌓은 제 감옥이에요.철조망 번뜩이는 탐조등은 없지만 스스로 벽을 쌓아 유폐된 감옥, 절해 고도----
그이가 살아 있었다면---- 온몸 멍처럼 시퍼렇게 물들이는 바다의 저 푸른 쪽빛, 마치 농익은 오얏을 깨물 때의 그 상큼한 맛으로 내 오관을 저리게 했을지도---- 철마다 흐드러지게 피는 저 핏빛 동백, 내 목에 화환으로 타올라 세상의 가슴에 내 꽃무늬 화사한 문신으로 새겨졌을지도--
그러나 저는 알아요. 스스로 갇힌 이 감옥,세상을 향한 집념,인간을 위한 모든 욕망을 버렸을 때 다가오는 포근한 고절감, 또 이것이 얼마나 끔찍스런 감옥인가를.그 안온암이 얼마나 뼈저린 자기 방기인가를. 저는 알아요. 자기 위안의 내 견고한 섬, 허망 위에 허망을 쌓아 물거품만 허벅지게 피웠다가 덧없이 스러지는 포말의 집이란 것을.
흉터--, 그이가 아니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섬.이제 정분난 남정네가 주고 간 정표 같아요.죽어서 비로소 잉태된 그이의 흔적이에요. 온통 그믐밤처럼 꺼멓던 탄광촌,제 몸 곡괭이가 되어야 살아남던 삶들,그들의 구멍 숭숭 뚫린 가슴의 空洞(공동) 같던 갱 앞에서, 스스로 온몸 불꽃 피워 어두운 삶을 밝히려 했던 그이, 몸 안주 삼아 들고 다니던 내 들병이 같던 세월, 썩은 몸둥이 무엇이 좋다고 밤마다 파고들어, 몸 던져 껴안아야 할 날들을 몸으로 말해 주던 그이.
그 흉터,술맛 떨어진다고 흘러 흘러온 갯촌의 시린 술주정을 피해,얼굴이 밑천인 이 화류의 세계에서 내치는 손길 손톱 세워들고 돼지 얼굴 보고 잡아먹냐고, 악머구리 몸부림 대신 홀로 어둠 속의 방파제로 나와 일렁이는 밤물결 앞에 서면,마치 최면이듯 부드럽게 속삭이는 그 영원한 잠에의 유혹--, 그 허망이 지어놓은 집으로 돌아가서 그이와 함께 잠들 이불만 펴면 되는 것을.
그러나 선생님, 병도 오래 앓으면 수족 같은 정이 든다 했던가요? 얼굴에 술을 끼얹으며 썩은 내 품을 파고드는 비린 생선 내음, 절이고 절여진 퇴락한 어촌의 그 한서린 세월, 그것 또한 내가 껴안아야 할 흉터가 아니던가요? 이 땅, 암호처럼 그이가 내게 주고 간 흉터, 그 살아 있는 날들의 의미가 아니던가요? 잡풀도 새들의 둥지를 짓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