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서 떠돌며 부유하던 낙엽같은 마음이 섬에 오니 가벼이 닻을 내린다 바다를 에워싼 바람과 빛과 파도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섬의 뿌리를 보고 목까지 차올랐다 흉한 가슴을 다 드러내는 밀물과 썰물을 받아내며 무심한 섬이 되었다 뭍에서 외롭던 사람은 더 이상 외로운 존재가 아닌 섬이란는 자유로운 독립국이 되었다 그렇게 섬은 단절된 고립의 영토가 아닌 욕심을 키우지 않고 스스로 자생하며 늙어가는 섬이란 영역은 누구의 소유지가 아닌 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주인인 공유지인 것 같다 바다는 섬과 섬의 경계를 허물기도 하지만 고립된 자아의 경계를 지켜주는 울울한 숲이기도 했다 갯벌이 허리께까지 드러난 해안을 거닐면서 나는 본디 먼 대륙에서 벗어난 섬이였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한 때 육지에서 멀어진 고립이 두려워 아득한 수평선에서 시선을 거둔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막막하면 막막한대로 멀어진 수평선에 기대어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사노라니 나도 번잡한 내륙에서 멀미를 느끼며 여기 섬까지 밀려 온 부유물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이 섬이 돌아갈 수 없는 유배지가 되어 먼 훗날 저 섬 언덕 초분속에서 바람이 되어도 좋다 체념의 순간에 찾아오는 안온함처럼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조바심을 씻어내며 걷노라니 내가 기다리는 게 무언지 모르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게 무언지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형상은 파도에 씻겨가고 밀려오는 그 무엇이 아니었는지 싶다 그것이 무언지 몰라도 이 섬의 경계 너머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해야 할 또 다른 섬이 있다면 외롭더라도 하루 종일 서 있는 등대가 되고 망부석이 되어 견딜 수 있으리라 날마다 물결에 내 몸이 조금씩 침식되어 사라진다 해도 기어이 백사장의 모래가 되리라 언제 돌아갈 지 모를 귀양길의 수인이라 해도 여기 섬에서 파도가 되고 갯바위가 되어 고독이라는 무거운 형벌을 묵묵히 견뎌내며 야위어 가는 섬이 되리라 살다가 외로우면 홀로 눈 뜨고 잠드는 바다위의 섬이 되어 섬처럼 혼자 울리라 나는 일찍부터 체념하는 습성에 익숙해졌을 뿐 파도만큼 삶에 간절했던 적 있었던가 누군가를 향해 섬처럼 지고지순한 기다림으로 바라본 적 있었던가 귓가에서 쉬임없이 찰랑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이젠 절절하다는 말을 지운다 이제는 다만 망망대해의 파도에도 늘 자리를 떠나지 않는 꽃섬이기를 바란다 2008.11.14일. 먼 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