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 2008. 9. 1. 17:30

 

 

 

 

 

  

 

           

 

                                                                                                                                                                                

                                                                                                                        <사진 : 네이버 con407님 포토갤러리에서>

  

 

 

        봄길을 오가던 자전거가 여름내내 방치되다 보니 탱탱하던 바퀴가 요실금을 앓았는지 시들하니 풀이 죽었다. 자연, 두 바퀴를

        굴리던 내 허벅지의 완력도 맥을 못추니  싱싱하게 달리던 원심력도 떨어져 질주하던  스피드가 제동이 걸리고 느릿한 속도로

        힘겹게 굴러간다. 모처럼 완행열차처럼  느릿느릿한 속도로 달리며 여름이 지나간 자리를  둘러 본다. 여름이 깊어지면서부터

        바쁘기도 하고 습하고 더운 한낮을 달릴 여력이 없어  서너달 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  햇바람이 제법 시원해 하천길로 나오니

        코스모스가 한창이고 하늘 가득 구름바다다. 날 선 억새와 갈대숲이 기가 꺾여 고갤 숙이고 개울가와 둔치의 풀섶도 짓푸르던

        풀빛을 물살에 씻어 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름동안 내린 비에 썩어가던 하천 바닥이 쓸려 내려가 물비린내 가득하던 탁류가

        정화되고 가라앉아  맑고 투명한 물살 아래 말간 모랫살을 드러내 놓고 있다.  속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개울길을 따라 간간히

        잿빛 해오라기와 쇠기러기들이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를 낚고 있다. 그 새 흐르는 물길을 따라 초가을이 오고 바람결도 물살을

        따라 한가로이 비단결같은 골바람으로 불어간다.그리고 구름이 유유히 물속을 유영하는 느린 시간속으로 산산한 구월이 왔다

 

        내 일상은 붙박이처럼 변할 것도 없이 지루한 모습으로 하루 하루 거듭되지만,  내 바깥의 세월은 강을 따라 바다로 가고 구름

        따라 산을 넘고 또 산을 넘어 어디론가 쉬임없이 가고 있다. 가는 세월처럼, 하늘 가득한 구름바다의 끝을 향해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내처 달려 가고픈 충동으로 마음의 패달을 밟으며  은빛 바퀴살을 굴리는 오후의 햇살 아래 해바라기가 여물어 간다

        코스모스, 구름, 햇바람, 해바라기. 이 몇 안되는 단어의 나열 가득  가을이란 계절이 느껴지고  그 안에서 구월이 달고 풍성한

        과육으로 단단하게 익어 간다. 구월은 풋밤처럼 풋과일처럼 설익고 부드러워 풋사랑처럼 달콤한 입맞춤처럼 떫지만 그리웁다

        점점 해걸음이 빨라지고  해그림자 길어져 가고 있다. 웬지 구월은  먼 지평선에서 시작해 가까운 벌판으로 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선가 구월이 되면  들길을 걷고 싶다.  벼꽃이 피고 벼가 익어가는 논길도 좋고  풋콩이 여물고 들깨향 짙어가는 밭둑길로

        풀벌레 소리 들으며 천천히 걷고 싶어진다. 그렇게 들길을 걸으면 구월엔 풀향기도 달고 구수했다. 농익지않은 구월의 시간은

        어쩌면 첫사랑 같은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구월이 오면 흰구름처럼 마음이 가벼워져 비밀처럼  방랑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고개를 넘기 전의 숨가쁘고 설레는 마음처럼 구월의 언덕은 동경과 기대감이 구름처럼 일어 어디론가 떠나  바깥을 내다 보고

        싶어져 과꽃이 흐드러진 역사 앞을 지나치려면 열려진 개찰구를 바라보곤 했다. 이제 구월도 추억의 시간이다. 아직은 누렇게

        바래지지 않은 앨범의 한페이지 같아 기억을 들춰보고 싶지만 아마도 나의 구월은 빛 바랜 압화처럼 곱게 접혀져 있을 것이다

        구월 첫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이 비 그치면 들길을 걷지는 못해도  힘차게 자전거를 타고 가을속으로 달리고 싶다

 

                                                                                                                                                   2008.9.1 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