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휴식의 시간을 보낸 후

먼 숲 2008. 8. 5. 11:29

 

 

 

 

 

 

 

 

 

 

 

  

        짧은 휴식의 시간이 지났다. 서너달 휴일도 없이 연속적으로 야근과 밤 샘일에 주일 근무까지 하며

        쉭쉭거리며 박차를 가하는 증기기관차처럼 내달리며 일하다 보니 하루가 주저앉고 싶을만큼

        고되고 짜증스런 일상이였다. 부족한 수면과 생체리듬이 깨지자 흐름이 원활치 못하고 누적된 채

        여기저기서 이상신호가 온다. 결국 멀쩡하던 몸이 피곤에 지쳐 진이 빠진 채 속으로 탈이 나고 

        일년마다 도지는 좌골신경통에 시달렸다. 음습한 통증은 침을 맞고 소염제를 먹는 순간만 말짱하다가

        다시 기분나쁘게 퍼지는 미미한 통증으로 이어져 몸통 반쪽 신경이 습한 장마처럼 젖어 있었다

        정거장도 없이 내달려야 하는 나는 한적한 간이역에 들어 모든 시동을 끄고 죽은 듯 쉬고 싶었다

        사나흘 푹 쉬며 충전의 시간을 가지면 몸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아 소풍날짜를 기다리는 애들처럼

        여름 휴가가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반년을 지나서야 잠시 쉬는 이번 휴가기간엔 아주 깊은 산골로 들어가 

        아무 계획없이 푹 쉬고 싶었지만 막상 집을 떠나면 오가는 길가에서 피로감만 쌓일 수도 있어

        떠나고 싶은 방랑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에서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며 늘어진 채로 쉬기로 했다

 

        그러한 마음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주일내내 자정이 넘도록 학원을 오가며 시험 스트레스에 지친 아이들도

        애들 뒷바라지에다 직장일에 시달리고 치솟은 물가고에 놀란  아내 역시 모든 걸 스톱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해마다 마음속에 떠나고 싶던 여행지를 미리 계획을 세워 다녀오곤 했는데

        머리커진 아이들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나이든 탓인지 준비하고 오가는 수고가 만만치 않게 생각되었다

        무리하고 싶지 않은 생각에 마음을 접으니 마음이 편해져 휴가 첫날은 모처럼 느즈막히 일어나는 게으름과

        출근이란 긴장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아침이 없어지고 모든 게 느릿해지고 자유로웠다

        노동으로 지친 일상은 단순해져 목욕탕에서 땀을 빼듯 피로의 독소를 제거 하고 나면 가벼워질 것 같았다

        건강 생각해 싱겁게 먹으라는 아내의 음식을 타박할 수도 없었지만 입맛이 떨어진 여름이면

        짭잘한 조개젓갈이 그립기도 하고 간간한 게 먹고 싶어 여름 휴가라는 핑계김에 모처럼 주방에 들어 

        내 식성대로 싱겁지 않은 텁텁한 찌게도 만들고 아이들 좋아하는 새콤 매콤한 골뱅이 비빔국수도 했다

        흐린 날엔 매운 고추를 푸짐하게 썰어 넣고 장떡도 부쳐 먹으며 시골스런 아비의 입맛을 알려 주기도 했다

        단 맛 빠져 짐짐해진 지금의 일상에 자극성 강한 맛은 새로운 힘과 의욕을 돌게 할 것 같았다

 

        작년부턴가 우리 가족도 제각각 바쁜 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올들어서부턴 아침에 얼굴을 보고

        한달에 너댓번 정도 저녁을 같이 할 뿐 모두가 자기 스케줄대로 허둥대며 살고 있었다

        오붓한 저녁이란 말이 무색해지고 텃밭에서 제철 푸성귀를 가져와도 아깝게 시들거나 녹아버리곤 했다

        많지도 않은 가족이란 구성원이 마주 앉아 있을 시간이 점점 적어지고 서먹해지고 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의 자유가 부러울 때인데 그 애들도 방학이 아니라 사나흘의 휴가가 전부고

        다시 하루종일 학원을 오가야 하니 학원비에 부담되는 부모도 힘들지만 아이들은 더욱 안스럽기만 하다

        대부분 이렇게 사는 게 이 시대의 모습이려니 하지만 모두들 그 자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을 것이다

        누구든 여름이 오면 자연인이 되어 흰구름처럼 어디론가 떠나고픈 방랑의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날 것이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로, 물소리 시원한 계곡으로, 깊어진 녹음의 그윽한 숲으로 떠나고픈 마음을 접고

        따분하고 게으른 휴가를 보내는데도 집에 있어선지 오후가 되면 이런 저런 일로 바빠진다

        다행이 휴가의 하루를 사진 출사를 하는 지인을 따라 넓고 평화스런 초원을 걷는 여유를 맛보았으니

        후딱 지나간 휴가지만 누적된 피로도 풀고 지친 마음도 조금은 충전이 된 듯 하다

 

        달콤한 휴식의 시간이 지났다. 휴가내내 꾸물거리던 흐린 날들이 지나고 지금은 쨍쨍한 염천의 날들이다

        따가운 태양을 피해 그늘로 비껴드는 더위지만 벌써 새벽시간엔 문지방을 넘는 바람이 서늘하다

        어제가 입추고 오늘이 말복이니 절기의 약속은 소리없이 다가오고 보이지않게 변하고 있었다

        가을이란 말을 서둘러 말하고 싶지 않지만 살갗에 스치는 가을의 느낌이 "벌써" 하고

        소름처럼 마음을 서늘케한다. 끓어 오르던 여름의 덧없음이 산그늘처럼 내려와 슬프게 한다

        한 해의 반이 지난 지 한참인데 휴가가 끝나니 반년이 지났다는 말이 새삼 일년이 간 것처럼 서운해진다

        이젠 삶이 고되다고 투정하지 않지만 살수록 꾀가 나고 마음보다 몸이 먼저 무겁고 버겁다

        아쉬운 휴가뒤에 짬을 내어 횡설수설 두서 없는 글을 쓰면서 꼭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그동안 툴툴거리면서도 내 생을 잘 살아 온 거, 혼자 잘 버텨 준 내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무능한 소시민이기에 점점 힘겨워지는 세상을 살면서 겨우 내 가족 밖에 보이지 않지만 

        내게 힘이 되어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랑하는 내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더없이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이제 다시 늘어진 심신을 추수리고 가다듬어 남은 계절을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램해 본다

        평범하지만 지금 이 순간 모두가 아프지 않고 무탈하게 산다는 것 보다 나은 게 무엇일까 생각한다

        아직 가을이란 말을 입속말로만 하지만 바라보는 하늘 멀리 가을이 서성인다

        길가엔 환하게 핀 코스모스처럼  반갑게 가을이 오고 있는 길을 가고 싶다

 

 

        2008.8.8 일.   먼    숲